그것은 어느 비오는 날의 초저녁이었다.
지하철에서 내리고 역 계단을 따라 올라오는데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 왜 하필이면- 」
올라온 계단을 다시 내려가 매표소 건너편 편의점에 들어갔다.
하늘색 바탕에 흰 구름이 순한 양처럼 두둥실 박혀있는 긴 우산을 집었다.
어느 누가 보아도 맑고 푸른 하늘의 그림이었다.
출구 바깥은 바람까지 불어 빗줄기가 낮게 깔리고 있었다.
오렌지색 가로등 주위로 무수히 많은 사선들이 그어졌다.
우산을 펼치고 몇 걸음을 떼었을까?
갑자기 강풍이 불어 나무가 무서운 소리로 흔들렸다.
그 때, 들고있는 우산 아래로 그 바람이 흘러 들어왔고
그대로 쭉 뻗어 수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땅으로부터 불쑥 멀어지니 덜컥 겁이 나버렸다.
우산 손잡이를 두 손으로 꽉잡았다.
점점 올라가는 우산을 타고 문득 아래를 바라봤다.
지하철 출구가 표시된 노란색 숫자의 불빛이 조금씩 멀어졌다.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의 여름저녁 하늘속에서
길다란 구름무늬 우산은 어느새 투명해지고 있었다.
우산의 하늘색이 엷어지며 마치 스프레이를 분사하듯이
주위를 감싸는 대기속으로 빠르게 번져갔고
하얀색 양들은 하나 둘 씩 우산으로부터 걸어나가
비오는 하늘로 올라갔고 흰구름이 되어 멈추었다.
그 구름들은 이내 다시 양떼처럼 모이더니, 점점 이쪽을 향해 움직였다.
합쳐진 큰 구름에 부딪힐 것만 같아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우산을 꽉 잡고 다른 팔로 무릎을 끌어 당겨 가슴에 안았다.
거대한 구름뭉치는 벌써 바로 앞 1미터까지 다가왔다.
눈을 질끈 감았다.
…… (암전) ……
계단을 하나씩 밟아 올라간다.
긴 장대우산이 쥐어진 오른손에 가벼운 힘이 들어간다.
지하철역 3번 출구 밖으로는 눈부신 햇살이 비껴들어오고 있다.
계단을 다 올라와서 밖으로 한 걸음 내딛고 우산을 펼친다.
사방의 모든게 하얗게 보일만큼 맑고 환한 빛, 그 한 가운데에
유리창처럼 투명한 비닐우산을 들고 멍하니 서있는다.
이제 다시 한 번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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